[다시금 그분을 그리워 하며]
저는 고우영 화백님의 그림이 좋았습니다. 조선시대에 풍속화 세계에 김홍도와 신윤복이 있었고, 그림의 필치로 보자면 님의 그것은 신윤복의 그것과 너무 맞 닿아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신윤복의 유명한 그림 중 '기다림', '계변가화', '단오풍정', '정변야화' 와 같은 작품들을 보면, 풍자와 해학, 노골적이거나 또는 숨어 있는 선정적인 느낌이 들어 있지요.
그처럼, 보다 적나라하면서 노골적이며, 결코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역사적 내용을 자신 만의 시각으로 재해석, 못 가진자, 못 이룬 자의 한과 이미 가진 자 중의 저열한 계층들이 보여주는 일그러진 욕망과 비열한 작태들을 단지 몇 개의 그림 칸에 녹여내었던 분. 필치로 본다면, '거친 듯 하나 펜과 붓 각각의 특징을 살린, 간결하면서도 때로는 역동적이고 정확한 인물 동작과 표정들은 선생님의 독보적인 영역이었다' 라고 알려져 있으십니다.
저는 화백님의 만화를 보면서 얄팍했던 가슴을 살 찌웠고, 모자란 머리에 생각을 담기 시작했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일본식의 만화 풍에 영향을 받던 화백님들과는 달리, '아 이런 만화도 가능하구나!' 싶을 만큼 때론 감성적이고 때론 충격적이며, 멈추지 않는 귀여운 해학과 익살 섞인 캐릭터, 또 때로는 야설적인 적나라함(성인 대상의 성적 개그 감각)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1960년대 말 ~ 1970년대까지, 당시는 '만화는 불량, 저질의 대명사' 라는 고정관념(박정희 전대통령과 그 이후 군사정권 시절, 군인 내지 중학생 수준의 문화 탄압)에 많은 어른들은 질타하였을 내용이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좋아 했습니다. 서슬퍼렇던 시절, 안기부의 사전 검열이랑 칼 앞에 그들이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버릴 건 버리고, 끈질기고 교묘하게 녹여 넣은 풍자가 사실은 살아 남아서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자 했던 고육지책의 아픔이 묻어 있다는 사실...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네요.
이제 여기에 님의 작품들을 나열해 두고, 조금의 여유가 되면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배 깔고 엎드릴 따뜻한 아랫 목이란 것은 이미 사라졌지만, 언젠가 정갈하게 마련된 마당 풀밭 한 켠에 놓인 평상에 걸터 앉아서......
[관련 링크들]
* 고우영 화백님에 대해 알고 싶으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보면 됩니다.
다음 블로거 ronaldo님 - <만화가 고우영>
블로거 capcold님 - 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한겨레21 - 우리는, 고우영 패밀리입니다
[작품 정보의 정리]
* 순서는 구판(오리지널)의 출판 년도 기준으로 조사한 것이며, 차남 고성언씨가 유작을 컬러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 이하 본문의 실명에 대해 존칭은 생략합니다.
1. 쥐돌이(1953)
일명 '떼기만화' 또는 '딱지만화'라고 해서 만화책이 나오기 전에 만화가들이 그려낸 재생용지
버전 그림책. 종전 후 피난 시절(당시 중학생), 부산 감만동 빈민촌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미키마우스 만화를 본 뜬 16쪽 단행본. 오늘 날 그의 만화 필치의 원형질이라고 알려져 있음.
아쉽고 슬프게도 해당 작품이 유실되어, 고인 본인 자신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얘기가 전해짐.
2. 짱구박사(1958)
잡지사 '만화학생'에 입사, 모교 이름을 딴 필명 추동성으로 활동, 요절한 형 고일영
(필명 추동식)의 유작을 이어 받은 작품
동 시기에 아짱에, 공주 애찌루(1960?) 등 다수 출간.
전쟁 전 고등학생 신분으로 만화를 창작했던 두 형(상영, 일영)은 종전 후 귀경하여 나란히 서울대
미대에 다녔으나, 두 분 다 6개월 터울로 작고 하셨다고 전해짐.
3. 대야망(1972) - 월간지 '새소년' 연재
세트 전5권 출간(어문각)
4. 임꺽정(1972) - 일간스포츠 연재(참조: 고우영과 스포츠신문만화)
'만화가 고우영'을 있게 한 일대 사건, 1972년 1월1일, 해외(일본과 구미 등) 일간지의 극화방식을
국내 일간지 최초로 도입.
만화가 저속한 아동용 오락 그림책에서 엄연한 '장르' 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작품.
스포츠신문=연재만화 라는 등식과 스포츠신문 2면 과 같은 표현이 만들어지는 등의
개인/사회적으로 역사에 남을 일.
1971년 일간스포츠 판매부수가 2만부, 1972년에 고우영 만화 연재 시작 이후, 1975년 판매부수
30만부 돌파.
5. 수호지(1973) - 일간스포츠 연재
일간스포츠 연재 중단(중도하차)
-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시절이 어수선한 시기였던 만큼 외압 또는 그에 대한 반발로 추정.
- 이후 수호지는 후배 만화가인 박대희(정보 없음, 강철수, 이우정과 동시대 인물)가 이어받아
연재했다고 전해짐.
1979년 첫 단행본 출간(우석출판사), 이후 6권까지 출간되고 절판(조개가 죽기 직전까지의
내용만 담음).
2001년 스포츠투데이에 수호지2000 연재.
중도 하차 이후 완결판은 근 30년 만인 2005년 경, 자음과모음에서 출간(전20권).
6. 꽃네별네, 해동일룡(1974) - 일간스포츠 연재
7. 일지매(1975) - 일간스포츠 연재
세트 전2권 출간 ... 후일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원판이 됨.
만화시리즈우표로 제작되기도 함.
'차가운 미소년' 이라는 이 캐릭터는 삼국지의 공명, 초한지의 한신, 열국지의 공자로
분하기도 하며, 오늘날 '나쁜 남자'의 모태 격.
8. 삼국지(1978~1980) - 일간스포츠 연재
2001 무삭제 복간판 세트 전10권 출간.
9. 미국만유기(1978)
10. 서유기(1980) - 일간스포츠 연재
11. 열국지(1981) - 일간스포츠 연재
2004. 자음과모음 출간(전6권)
12. 초한지(1984) - 일간스포츠 연재
13. 유럽만유기(1985)
14. 흑두건(1986) - 일간스포츠 연재
15. 한국고전극화 시리즈(1986~) - 일간스포츠 연재
가루지기(전2권), 놀부전, 바니주생전, 연산군, 박씨전, 통감투, 오백년, 중국귀신, 거인야사 등.
신 고전열전 시리즈 - 애니북스에서 2008년 복간한 전10권짜리 전집이 있음(일간스포츠 연재 아닌
예전 작품도 포함).
-> 아라노와오가녀(1976, 어문각), 흑두건(1986, 일간스포츠), 거북바위, 통감투
(1987, 일간스포츠), 놀부전, 바니주생전(1988, 일간스포츠)
* '놀부전'은 당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던 반전 개념을 그의 독특한 시선으로 그린, 놀부가
주인공인 현대적 흥부전.
* '통감투'는 수양대군과 단종의 역사적 사건 내부를 민중적인 시각으로 그림.
* '바니주생전'은 남녀간 연애 심리를 재미있게 묘사함.
* '거북바위'는 물과 바람, 불에 관한 판타지.
* '흑두건'은 조선조 당파싸움을 배경으로한 민중들의 이야기.
* '아라노와 오가녀'는 고구려 건국 직전의 부족 통합 시대 두 쌍둥이 남매의 모험담.
16. 야한여인 장녹수(1989)
한국출판문예, 전9권
17. 중국만유기(1994)
18. 십팔사략(1994~2004)
청소년 추천도서인데 18금이었던...
2012, 컬러판 출간(애니북스, 전10권) - 차남 고성언 채색, 번역되어 중국에도 출간.
19. 수호지2000(1998) - 스포츠투데이 연재
20. 수레바퀴(2003) - 2000년에 준비하여 오랜 만력을 담아낸 최고의 유작, 굿데이신문 연재
자음과모음에서 전집으로 출간(2009년, 전8권).
21. 한국만화야사(2005)
타계 직전까지 집필하시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유작으로 알려져 있음.
22. 구름 속의 아이(2007)
고인 생전의 자서전으로, 추모 2주기 기념 에세이로 출간(자음과 모음).
[뱀 꼬리들]
* 딱지만화란 바로 이런 것
* 부평의 한국만화박물관에 전시된 옛날만화들, 여기에 고우영기념관이 따로 있음
* 군사정권 시절에 난도질 당했던 작품의 복원작업(딴지일보 무삭제CD본) 들
* 잘못된 정보로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정리한다고 했지만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수정되어야할 내용이 있다면 부담 없이 지적 바랍니다.
- Barracu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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